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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3 (토)

[지볶행 인문학 로드] 현대 문학의 시작, 카프카와 체코

제 2강 작가들의 작가 카프카

‘지볶행 인문학 로드’는 ‘지볶행’의 여행지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전문 지식을 알려주는 인문학 콘텐츠입니다.
전문가, 현지인으로 구성된 패널이 자유로운 대담 형식으로 다양한 분야의 깊이 있는 정보를 전달하여 여행가기 전에 꼭 봐야 하는 콘텐츠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영상 콘텐츠는 촌장엔터테인먼트 유튜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대담자 : 임동현 (전북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홍진호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공연예술학과 교수), 임동우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이티나(체코인)

지볶행 인문학 로드의 두 번째 주제는 ‘지지고 볶는 여행’(이하 지볶행, 매주 금요일 밤 8시 40분 ENA,SBS플러스 방송 및 티빙)에 등장한 ‘황금소로’와 그 길 한 켠에 자리 잡은 카프카의 생가를 중심으로 카프카 문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프라하 성은 고건축 단지

임동현 : 프라하가 있던 지역인 보헤미아 지역은 일찍부터 보헤미아 공국이 발달했다. 나중에 보헤미아 왕국으로 발전하게 된다. 프라하성이 처음 지어진 것은 870년인데 초대 보헤미아 공작인 보르지보이 1세 때 이 성을 건축했다. 보헤미아 공국 역사의 시작을 알린 건축물이다. 이 프라하 성은  규모가 가장 큰 성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사실 프라하 성은 성 한 채가 아니고 그 안에 많은 궁전들 그리고 성당, 예배당, 정원까지 포함하는 하나의 건축 단지라고 생각해야 한다. 

 

임동우 : 실제로 대통령 관저도 프라하 성에 있다. 프라하성은 오랜 기간 동안 확장을 하면서 성당도 생겼다. 9세기 때는 로마네스크 양식이 왔고 그 다음에는 고딩 양식이 왔다.  그 후 르네상스 양식도 있고 나중에는 바로크 양식까지 더해져서 성이 도시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이유는 이런 양식들이 중첩되어 있어서 다양한 건축 양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건축학 공부를 하기 좋은 도시가 프라하다.

 

황금소로에 있는 카프카 작업실

임동현 : 프라하 성을 둘러보고 동쪽으로 나오면 황금소로로 이어진다. 황금소로라는 것은 말 그대로 작은 골목을 말하는데 이름에 황금이 붙은 이유는 17세기에 연금술사들이나 아니면 금은세공사들이 거주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16세기 경에 프라하 성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나 프라하 성을 지키는 군인들이 거주하는 골목이었다. 저는 황금 소로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연금 술사들이 여기 거주했던 곳이라는 설이 상당히 좀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그 카렐 4세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아 왕국의 국왕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겸했던 루돌프 2세가 실제로 연금술에 굉장히 심취해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황금소로를 걷다 보면 카프카가 작업을 했던 작업실이 있다.
 

홍진호 : 동생이 살던 집을 한 1년 정도 빌려서 작업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카프카는 오늘날의 덕후 같은 느낌이 있다. 문학 덕후인데 그는 읽는 것보다 쓰는 데 매력을 많이 느꼈던 사람이다. 카프카는 1900년대 초반에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프라하는 놔주지를 않는다.”라면서 프라하를 자그마한 엄마로 표현하면서 “엄마는 새의  발톱을 가지고 있다.”라고 표현한다. 이중적인 의미의 편지 내용을 살펴보면 불이 크게 나지 않는 한 나는 프라하를 떠날 방법이 없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방법이 없다가 프라하를 떠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엄마였다. 엄마 품을 나는 떠날 수가 없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프라하라고 하는 도시는 카프카에게 있어서 너무나 각별했던 도시였다.

 

이티나 : 황금소로의 카프카 작업실은 이제 따로 돈 내고 들어가야 한다. 제가 어렸을 때인 2002년에는 그냥 무료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돈 내고 들어가야 한다.

 

건축학적으로 의미있는 카프카 소사이어티 센터

임동우 : 그런데 건축하는 사람들한테는 카프카 뮤지엄보다는 ‘카프카 소사이어티 센터’가 의미있다. 리모델링을 스티븐 홀이라는 매우 유명한 건축가가 했는데 저도 실제로 가보지 못했지만 그 공간이 담아내는 빛 등이 오묘한 문학과 많이 닳았다는 평가를 한다.

 

독일어로 작품을 썼던 카프카

홍진호 : 프라하는 카프카의 고향이다. 그러나 지금 그 박물관에 가서 카프카가 쓴 걸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19세기 중반까지  체코에는 독일어를 쓰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그 다음에 체코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 독일어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카프카가 독일어로 썼다고 하더라도 이건 체코의 문학이다. 그런데 지금은 체코가 독일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체코인들은 자신들의 작가지만 그 작가의 작품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카프카 박물관 같은 곳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 없기 때문에 카프카가 우리 작가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도시는 프라하 말고는 없다.

 

 

이티나 :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사는 유대인의 역사와 깊이 관련이 있다. 그래서 카프카 박물관에 가면 카프카에 대해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고 프라하에 살았던 유대인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

 

카프카는 프라하의 문화적 혼종성을 보여주는 사례

임동현 : 들어보니 카프카의 삶 자체가 프라하가 갖는 문화적 정체성과 혼종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카프카의 문학도 이런 혼종성의 산물이다.홍진호 :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굉장히 재미있는 사람이다. 사실은 전례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작가다. 카프카는 전 세계 문학을 통틀어서 비슷한 문학을 한 사람이 그 전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 문학사 전체를 훑어봐도 카프카 같은  작가는 없다. 갑자기 툭 튀어나왔는데 이게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성장한 배경이 이 프라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지배하는 다민족의 다문화 언어의 영역 속에서 살고 성장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가의 작가 카프카

홍진호 : 카프카는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데 2024년 100주년이 되던 해에 전 세계적으로 정말 행사가 열렸다. 체코는 뭐 말할 것도 없고 독일어 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많은 행사들이 열렸다. 마흔에 세상을 떠난 카프카가 죽은 지 100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카프카가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아마도 카프카가 묘사하고 있는 아주 기괴한 삶의 장면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가 벌레로 변해 있었다'라고 시작되는 기발한 상상력이다. 초자연적인 사건이 벌어졌으니까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그런데 읽다 보면 그냥 벌레로 변한 게 아니라 점점 이건 내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나는 벌레처럼 소외된 존재이고 나의 가치는 오로지 경제적인 것 밖에 없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 기능을 상실하자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점점 멀어지고 마는구나. 벌레처럼 가족에게 짐이 되는 존재가 되어 버리고, 가족 안에서 역학관계 혹은 애정 관계 혹은 부자 관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사실적인 소설보다 더 잘 보여준다.

 

과장된 형상화로 현실을 인식시키는 힘그런 식으로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장된 형상을 통해서  더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카프카의 가장 커다란 힘이다. 그렇지만 ‘변신’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이고 일부 소설들은 이해할 방법이 없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소설을 쓰는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데 대개의 경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누군가 소설로 쓰면 이건 소설로서 가치가 없어라고 덮어버리는데 카프카는 이상하게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 뒤에 뭐가 숨어 있는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카프카의 책은 모더니즘이 시작되던 시점이기도 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에 어떤 새로운 종류의 문학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은 존재였다. 더 이상 이해할 수 있는 내러티브가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그것 자체로 매력적인 작가다.

 

카프카에스크(Kafaesque)

독일어 사전에 등재된 ‘카프카에스크’라는 단어가 있다. 카프카에스크는 어두운 불확실성, 수수께끼 같고 구체적이지 않은 협박, 환영과 같은 어두운 힘 앞에 내버려진 존재에 대한 섬뜩한 감정을 말한다.  카프카적인이라는 것은 끔찍하고 기이하고 기괴하고, 근데 웃기기도 하고 말도 안 돼서 재미있기도 하고 그런데 현실을 너무 잘 보여주는 것 같을 때 쓰는 단어가 카프카에스크다. 문화적인 영향력으로 따지자면은 유럽 문학에서 그를 넘어서는 작가를 찾기 쉽지 않으며 세계 문학에서 굉장히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고 지금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여전히 많은 팬들과 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작가다. 독일 문학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독일어 권에서도 매우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런 작가다.